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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고리즘 시대의 소유 개념

by 재리 리포터 2025. 10. 9.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매일같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우리의 말, 행동, 클릭 하나에서 비롯되며 — AI는 그것을 학습해 점점 더 ‘똑똑한’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AI가 성장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한 건 우리인데,
그 데이터로 만들어진 부와 권력은 왜 기업의 손에만 쥐어지는가?

이 글은 ‘데이터의 소유’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AI 시대에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고리즘 시대의 소유 개념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고리즘 시대의 소유 개념

1️⃣ 데이터는 ‘우리의 흔적’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매 순간 데이터를 남긴다.
스마트폰의 위치 기록, SNS의 ‘좋아요’, 검색창에 입력한 단어 하나까지도 모두 흔적이 된다.
이런 흔적들은 개별적으로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수백만, 수억 명의 행동이 축적되면 사회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는 거대한 지도가 된다.
이 데이터는 단순히 기록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 욕망, 관계, 심리까지 반영된 ‘디지털 자아’의 집합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 데이터가 정작 우리 손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그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주체는 대부분 거대 기업이다.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플랫폼들은 우리가 남긴 흔적을 학습하여 개인의 취향을 예측하고, 광고를 최적화하며, 더 나아가 AI 모델을 훈련시킨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법적으로 데이터는 ‘정보’로 분류되며, 재산권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이 그 데이터를 통제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사용자는 단지 ‘동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신의 디지털 흔적에 대한 권리를 사실상 넘겨주는 셈이다.

 

2️⃣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부는 누구의 것인가

AI는 ‘데이터’라는 원유를 통해 작동하는 정제소와 같다.
ChatGPT나 이미지 생성 모델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단어와 이미지를 학습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과 창작물을 압축한다.
이 데이터의 대부분은 개인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남긴 것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물, 즉 AI가 만들어내는 부와 영향력은 철저히 기업의 소유다.
AI 기업은 무료 혹은 저가의 데이터를 이용해 고도화된 모델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반면, 그 원천이 된 ‘사용자 데이터’의 기여도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디지털 봉건제와 같다.
우리는 플랫폼이라는 ‘영지’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데이터를 남기지만, 그 수확의 소유권은 ‘영주’인 플랫폼 기업에게 돌아간다.
창작자들이 “내 글이 AI 학습에 쓰였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일부 나라에서는 ‘데이터 사용료’ 혹은 ‘AI 학습 보상금’ 제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저작권 문제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노동 개념을 다루는 시도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의 AI 산업은 공유된 데이터에서 사유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이 불균형은 데이터의 ‘소유’뿐 아니라, ‘가치 환원’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3️⃣ 알고리즘 시대, ‘소유’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누가 데이터를 가졌는가”가 아니다.
진짜 핵심은 “누가 데이터를 통제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가”이다.

기존의 소유 개념은 물리적 자산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은 복제 가능하고, 무한히 확장된다.
이 때문에 ‘배타적 소유권’을 정의하기 어렵다.
그 대신 최근에는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혹은 ‘데이터 커먼즈(Data Commons)’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 데이터 주권은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 사용·이동·삭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유럽의 GDPR이 대표적인 사례다.
  • 데이터 커먼즈는 데이터를 사유화하지 않고,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하자는 움직임이다. 공공데이터나 학습용 오픈데이터 프로젝트가 여기에 속한다.

이 두 접근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데이터를 다시 사회의 손으로 되돌리자”는 철학을 갖는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제안이 아니라, 앞으로의 AI 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반드시 풀어야 할 구조적 과제다.

앞으로의 AI 시대에 진정한 혁신은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의 가치를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곳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디지털 흔적이 다시금 개인과 사회의 이익으로 순환되는 구조,
그것이 ‘알고리즘 시대의 새로운 소유’의 방향이다.


AI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그 혜택 또한 인간 전체의 것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데이터의 주인을 다시 정의하는 일은 단순히 기술적 논의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정성을 되찾는 철학적 과제다.

“나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면,
그 세상의 주인도 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