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시대, 우리는 이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스크롤 한 번이면 최신 논문과 통계, 전문가의 요약까지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일수록 진짜로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보는 풍요로워졌지만, 사고는 빈곤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앎의 본질’을 다시 묻는 기록이다.
1️⃣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AI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착각을 만든다. 검색창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순간 우리는 마치 그것을 이해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이해가 아니다. 정보의 결과만을 소비하는 행위는 사고의 과정을 생략한 단순 암기에 가깝다. 과거에는 지식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했다. 책을 읽고,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스스로 정리하며 생각해야 했다. 그 과정이 바로 ‘이해’였다. 그러나 지금의 AI 시대에는 결과만 남고, 과정이 사라졌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많이 알지만, 더 얕게 생각하게 된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지식의 밀도는 오히려 희박해진다. ‘앎’은 본래 사고의 시간과 마찰 속에서 자라난다. 이해는 단순히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언어로 번역하고 내 삶의 맥락에 녹이는 과정이다. 반면 AI가 주는 정보는 언제나 타인의 언어로 요약된 지식이다. 그것은 완벽하지만,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경계를 구분해야 한다.
2️⃣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고는 평준화된다
AI는 지식의 민주화를 완성했지만, 동시에 생각의 평준화를 가속화했다. 모두가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지식의 양은 늘었지만, 생각의 다양성은 줄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정보가 넘칠수록 인간은 선택을 두려워하고, 결국 AI가 제시하는 ‘가장 안전한 정답’을 따른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에서 ‘결과를 고르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진짜 위험은 무지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다. 예전에는 ‘모른다’는 감각이 사고를 자극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이 사고를 멈추게 한다. 정보의 홍수는 사고의 빈곤을 낳는다. 인터넷과 AI가 제공하는 모든 답은 완벽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의심의 여지’가 사라졌다. 인간의 사유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으면, 사고는 정지되고, AI는 우리의 인지적 결정을 대신한다. 이렇게 정보의 홍수는 우리를 더 많이 아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비슷하게 아는 존재들’로 평준화시킨다. 진짜 앎은 집단적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스스로의 해석을 통해 구축된 개인적 의미다.
3️⃣ 진짜 ‘앎’을 얻기 위한 사고의 훈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보의 시대’ 속에서 진짜로 아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나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첫째, 정보를 의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답은 논리적으로 정확하지만, 그것이 곧 ‘진리’는 아니다. 정보의 출처, 맥락, 그리고 배제된 관점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의심은 비판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둘째, 정보를 내 언어로 바꿔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같은 문장을 복사해 기억하는 것은 암기지만, 그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은 이해다. AI가 써준 글을 읽고 끝내지 말고, 그 내용을 직접 설명하거나 기록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진다. 셋째, 정보의 속도를 늦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AI는 속도의 기술이지만, 사고는 느림의 기술이다. 깊은 이해는 빠른 정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 읽고, 오래 붙잡고, 스스로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짜 앎은 ‘빠른 답변’이 아니라 ‘느린 깨달음’에서 자란다. 넷째, 감정과 직관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논리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감정은 우리가 어떤 정보에 끌리고 왜 그것을 신뢰하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나침반이다.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자각하는 것은 정보 선택의 질을 높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결국 ‘진짜 앎’은 정보의 완성도가 아니라, 해석의 주체성에 달려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대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보는 세상을 설명하지만, 앎은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정보는 완벽할지 몰라도, 인간의 사고는 여전히 그 위에 존재한다.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형성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는가에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결국 하나다 — 느리게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내면의 언어로 다시 써내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있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