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지식의 평등을 실현했다. 누구나 클릭 한 번으로 전문가의 해석을 볼 수 있고, 최신 논문과 데이터, 세상의 모든 관점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의 민주화’라는 찬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지식의 평등은 사고의 평준화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모두가 같은 정보 속에서 사고하고, 비슷한 논리로 결론을 내리며, 같은 관점을 ‘합리적’이라 부른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사고는 표준화된다. 지식의 민주화가 오히려 생각의 획일화를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아는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 지식의 평등이 만든 역설
인터넷과 AI는 지식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예전에는 전문가나 학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가 이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는 분명 인류 문명에 있어 거대한 진보다. 그러나 정보가 평등해질수록, 사고의 구조는 오히려 단순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같은 도구’로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검색 결과, 유튜브의 알고리즘, AI의 요약 — 모두 비슷한 논리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접하는 정보의 흐름은 점점 동일해지고, 결과적으로 사고의 틀이 평준화된다. 과거에는 지역, 문화, 교육 환경에 따라 생각의 다양성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동일한 데이터와 해석을 소비한다. 마치 거대한 사고의 중앙집권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보는 뉴스, 배우는 지식, 심지어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하나의 알고리즘적 질서 안에서 조율되고 있다. 정보는 민주화되었지만, 그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은 극도로 중앙집중적이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평등이 만들어낸 사고의 불평등’이다 — 모두가 같은 것을 보지만, 아무도 다르게 보지 않는다.
2️⃣ 사고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이유
사람들의 사고가 평준화되는 이유는 단지 정보가 같아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외주화되었기 때문이다. AI는 우리에게 ‘가장 효율적인 결론’을 제공하고, 플랫폼은 ‘가장 인기 있는 관점’을 추천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각하기보다 ‘동의하기’를 택한다. 다수의 합리성에 기대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정보는 무한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해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준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한 사고를 반복하게 된다. ‘나의 생각’이라 믿지만, 사실 그것은 플랫폼이 선택한 생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사회는 점점 더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군집으로 나뉘고, 다른 관점은 불편한 잡음으로 취급된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사고의 자유는 줄어든다. AI와 정보화의 시대가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사유의 독립’을 약화시킨 것이다.
3️⃣ 사고의 평준화 시대를 벗어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평준화된 사고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생각하는 방식을 다시 인간의 손으로 되돌리는 것, 즉 사유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첫째, 정보를 소비하지 말고 대화하라. AI나 검색이 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과 대화하듯 반문해야 한다. “정말 그럴까?”, “이건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사고의 근육이 움직인다. 둘째, 의도적으로 다른 관점을 찾아라.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만 소비하면 생각은 편해지지만, 세상은 좁아진다. 나와 반대되는 입장, 낯선 분야, 다른 문화의 관점을 일부러 탐색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고의 확장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시선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셋째, 불완전한 생각을 두려워하지 말라. 완벽한 답을 찾으려는 습관은 사고를 멈추게 한다. 인간의 사유는 본래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이다. 그 불완전함이 바로 창의성과 독립성의 출발점이다. AI가 완벽한 정답을 줄수록, 인간은 불완전한 사유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사유의 다양성은 인류의 진화가 만들어온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효율과 정확성의 이름으로 그 자산을 스스로 축소시키고 있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사회는 안전하지만, 진보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낸 집단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일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 사고의 주체로 서려는 용기. 지식의 민주화가 완성된 시대, 이제 필요한 것은 사유의 민주화다. 지식이 평등해진 만큼, 생각은 다시 불균등해져야 한다. 다양성은 경쟁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모두가 같은 답을 말할 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시대를 이끈다.